② 키메이커게임즈 이남원 대표 인터뷰
슈퍼패스트 넥스트에 선정된 두 팀은 꽤나 대조적인데요. 트라이펄게임즈가 12명의 베테랑으로 구성된 팀이라면, 키메이커게임즈는 1인 스튜디오입니다.
키메이커게임즈 이남원 대표님은 2015년 창업 이후 올해로 11년 차를 맞이했어요. '다크소드'로 정점을 찍었고, 현재는 '아이언 섀도우: 서바이벌 프로토콜'로 스팀과 콘솔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슈퍼패스트에서 1인 개발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대표님의 서사를 담아보았습니다.

태생부터 Maker
대표님의 게임 개발 서사는 어렸을 적 좋아했던 '분해'에서 시작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만드는 걸 되게 좋아했어요. 집에 있는 온갖 물건을 분해했다가 못 맞추고, 누가 버린 전자제품이 있으면 끌고 와서 다 뜯어보고. 나는 과학자가 될 거다, 그랬죠."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에는 관심이 그림으로 옮겨갔어요.
대학에서 공대에 진학했다가 군 복무 이후 서양화과로 전과했고, IT 붐이 일던 2003년 무렵 그림을 그리던 인터넷 동호회 친구들이 하나둘 게임업계로 진출하는 걸 보고 학교를 휴학한 뒤 게임사에 취직했어요.
남원 대표님은 그렇게 원화, 컨셉 디자인, 일러스트를 두루 다루며 12년을 회사원으로 지냈습니다.
그러다 3년을 넘게 다닌 회사에서 어느덧 30대 중반이 됐고, 깨달았다고 해요.
"원화는 감각과 트렌드가 중요해서, 그림 잘 그리는 어린 친구들이 유리한 포지션이거든요. 안 되겠다, 내가 잘할 수 있는 다른 걸 찾아야겠다."
그렇게 게임회사 디자이너가 게임 개발을 배우기 시작했어요.회사에서 맡은 모바일 프로젝트가 무산된 뒤에는 집에 돌아와 밤마다 개인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몇 달 뒤 인터넷에 올린 테스트 버전에 중국과 일본에서 오퍼가 왔습니다. 그렇게 2015년, 남원 대표님은 퇴사 후 키메이커게임즈를 창업했어요.
첫 성공이라는 독
창업 후 런칭한 첫 게임 '다크소드(Dark Sword)'는 아주 잘되었다고 해요. 그런데 대표님은 그 성공을 회고하며 '독'이라는 단어를 썼어요.
"초년의 성공은 독이라고들 하잖아요. 저는 이미 30대 중반이었고, 회사도 다닐 만큼 다녔으니까 나는 초년이 아니다, 나한테는 독이 되지 않을 거다. 계속 그렇게 경계했어요. 그런데 사람이 더 큰 고생을 해보지 않으면 고마움을 모르더라고요. 자기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데도 결이 흐려지고요."
"그다음에도 내가 계획한 대로 하면 잘될 거야, 하고 갑자기 SF로 간 거죠. 가장 큰 실수는, 비슷한 걸 또 했다는 거예요. 그림이 바뀌면 다른 게임이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어요."
시스템은 비슷했지만 중세 판타지에서 SF로 바뀐 외피를 유저들은 완전히 다른 게임으로 받아들였어요.
'그래, 또 하면 돼.' 그렇게 시작한 것이 로그라이크 '언디스트로이드'였습니다.
모바일에 어울리지 않는 게임이라며 말리는 사람이 많았지만 밀어붙였고, 검증을 받고 싶어 게임 오디션에 출품했어요.
줌 화면을 잔뜩 띄워놓고 발표한 그 무대에서 우승했습니다. 그런데 대표님이 들려주는 이야기의 결말은 오디션 우승이 아니었어요.
"그때 컨택한 회사들이 그러더라고요. 이거 모바일 말고 스팀·콘솔로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근데 저는 계속 모바일만 해왔으니까, 모바일로 할 거라고 했어요. 그게 패착이었죠."
게임 오디션은 플랫폼이 아니라 게임 자체를 평가했기에 우승할 수 있었지만, 시장은 달랐어요. 100만 다운로드를 넘기고도 수익성은 기대에 못 미쳤습니다.
"오디션 1등은 게임적으로 인정받은 거고, 실제 시장에서는 다른 문제였던 거예요."
그렇게 오답노트가 만들어졌어요. 현재 개발 중인 '아이언 섀도우: 서바이벌 프로토콜'은 언디스트로이드의 자산을 기반으로, 그때 흘려들었던 조언 그대로 스팀과 콘솔을 목표로 다시 깎아낸 게임이에요.

"처음부터 다시 만들기엔 시간이 걸리니까, 내가 가진 자산 중에 뭘 다시 해볼까 한 거죠. 내가 만든 것들이 상품성이 있나 없나, 그걸 검증하고 싶은 단계였어요."

장르 설계에는 10년 치 관찰이 들어갔어요. 뱀서류로 불리는 서바이벌 장르의 반복 플레이 재미에, 어릴 적 오락실에서 몸에 밴 횡스크롤 액션을 결합했습니다.
고정 탑뷰가 공식처럼 굳은 장르에서 흔치 않은 조합이에요. 실제로 슈퍼패스트 넥스트 피칭데이에 오른 20개 팀 가운데 서바이벌 장르는 키메이커가 유일했어요.
혼자서 버티는 기술
키메이커게임즈는 1인 스튜디오예요. 필요할 때는 오랜 협업자들과 아웃소싱으로 일합니다. 혼자 일하는 게 외롭지 않냐고 묻자 꽤나 명쾌한 답이 돌아왔어요.
"외로울 일이 없어요. 전혀요. 혼자 고민하고 시작해서 여기까지 왔으니까 그게 관성이 된 것 같고, 다른 감정이나 불안감은 루틴으로 해소하니까 오히려 '어떤 게임을 어떻게 재미나게 만들어서 완성할까' 하는 고민을 온전히 할 수 있는 거죠."
창업 초기에는 하루 16시간, 많을 때는 18시간씩 개발했다고 해요. 그러다 40대에 접어들며 대표님은 마인드셋의 축을 바꿨어요.
"내가 사업을 이렇게 해야지, 가 아니라 나 스스로를 어떻게 일으켜 세울지였어요. 운동하는 시간, 잠자는 시간, 아이와 보내는 시간을 분배해서 루틴을 확실하게 가져가는 것. 그게 바로 서서 잘 굴러갈 때, 게임을 개발하는 과정도 그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거든요."
루틴을 이렇게까지 붙잡는 이유는 분명해요. 1인 스튜디오의 10년은 한 번도 순탄한 적이 없었으니까요.
"항상 위태롭죠. 제품이 나오기 전에 이게 맞나 안 맞나를 1년씩 고민해야 하니까요. 그러니까 내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스트레스 관리 잘하고, 건강 관리 잘해야 개발하면서 생기는 문제들을 어떻게든 해결하고 한 걸음 나갈 수 있는 거예요."

열쇠 깎는 사람
사명의 유래를 묻자, 대표님은 영화 매트릭스의 한 캐릭터를 꺼냈어요. 주인공을 최종 목적지로 연결해 주는 열쇠를 만드는 사람, '키메이커'.
한국계 배우가 연기한 그 열쇠공 노인이 묵묵히 열쇠를 갈아내는 모습의 잔상이 오래 남았다고 해요.
"TV에 나오는 장인 할아버지들 있잖아요. 한 땀 한 땀 계속 뭔가 만들고 다듬는. 나도 나이가 들면 저런 모습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게임 개발이 그거랑 굉장히 비슷하거든요. 유저가 재미를 느끼는 그 부분을 열 수 있는 열쇠를 만들고, 마음을 열고 싶은 거예요. 열릴지 안 열릴지 모르겠지만, 우선 열쇠를 깎아요. 열어봐요. 안 열리면 또 깎고, 또 보여주고."
그렇다면 유저의 마음이 '열렸다'는 건 어떻게 알까요?
"소규모 개발사 대표님들끼리 제일 많이 하는 얘기가 '지표 잘 나오니?'거든요. 그런데 저한테는 오히려 깜짝 놀랄 정도로 감동적인 리뷰가 최소 두세 개 이상 발견됐을 때예요."
그리고 행복감을 느꼈던 두 개의 리뷰 이야기를 들려줬어요.
하나는 얼마 전, 몇 년 만에 들어가 본 다크소드 게시판에서 발견한 글이에요.
"초등학교 때 정말 재밌게 한 게임인데, 군대 갔다가 휴가 나와서 혹시나 하고 해봤더니 아직 서비스 중이시네요. 게임을 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억이 추억으로 갈무리될 수 있는 게임 타이틀이 된다는 거, 그게 엄청난 거거든요. 10년이 지나니까 이런 게 생기는구나 싶어서 엄청 감동스러웠어요."
다른 하나는 스팀에 올라가 있는 아이언 섀도우 데모에 달린 영어 리뷰예요.
흥분한 어조로 빼곡히 적힌 그 글의 주인공은, 길어야 세 시간이면 끝나는 데모를 26시간 플레이했어요.
"단순히 '재밌다, 할 만하다'가 아니라 엄청 몰입해 있는 느낌이었어요. 게임은 일종의 메신저거든요. 내가 이런 재미를 넣었으니까 제발 느껴달라는 신호인데, 그 신호가 수신됐다는 거잖아요. 그러면 '아, 내가 잘 만들었구나' 생각해요."
10년 버텼으니, 10년 더
우연하게 페이스북 공고를 보고 슈퍼패스트 넥스트에 지원하게 되셨다고 해요.
이번 선정으로 대표님이 기대하는 것은 역할의 분담인데요. 10년간 대표님을 가장 어렵게 한 건 게임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드러내는 일이었거든요.
"요즘은 게임이 정말 엄청난 숫자로 쏟아지거든요. 제품을 만들어도 드러내지 못하면 판매되지 않아요. 그런데 저는 SNS를 안 하던 사람이라, 올해 몇 달 홍보를 직접 해봤는데 소모되는 에너지와 시간, 비용까지 정말 어렵더라고요."
마케팅과 홍보 인프라, 그리고 전문적인 피드백을 통한 게임 고도화. 대표님이 슈퍼패스트와 퍼블리싱을 맡는 오프문(OFFMOON)과의 협업에서 기대하는 두 가지예요. 아이언 섀도우는 2027년 상반기 스팀 출시를 목표로 다듬어지고 있습니다.
대표님께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목표를 물었어요.
"10년 버텼으니까, 10년 더 버티는 게 목표고요. 내 환경을 어느 정도 컨트롤할 수 있어야 변화의 폭이 적고, 루틴이 유지되고, 그러면 어떤 게임을 개발하든 내가 원하는 시점까지 영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물었죠. 지금도 재밌으시냐고.
"하루 18시간씩 일하던 예전이 훨씬 더 재밌었죠, 그런데 그때는 그때의 재미가 있는 거고, 지금은 지금 나름의 재미가 있어요. 이렇게 협업하고, 인터뷰하는 과정도 그 재미 중 하나가 될 거고요. 충분히 재미있게 개발하고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남원 대표님은 오늘도 책상 앞에 앉아요. 유저의 문이 열릴지 안 열릴지는 몰라요. 그래도 우선, 열쇠를 만드는 장인처럼 게임을 다듬고 깎아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