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트라이펄게임즈 정만손 대표 인터뷰
지난 7월 개최된 게임 발굴 프로그램 슈퍼패스트 넥스트에는 약 100개 팀이 지원했습니다.
그 중 서류심사에 통과된 20개 팀이 피칭데이 무대에 올랐고, 최종적으로 두 팀이 선정되었어요.
선정팀 중 트라이펄게임즈는 판교에 위치한 12명으로 구성된 소규모 게임 스튜디오입니다.
슈퍼패스트가 게임업계 외길인생 24년차 정만손 대표님의 이야기를 담아보았어요.
최초의 고민이 모여 창업의 발판으로
대표님과의 대화에서 느꼈던 것은 ‘최초' 혹은 '전례 없다'의 마일스톤이 많다는 점이었어요.
대표님의 첫 커리어였던 조이온(Joyon)의 '거상'은 PC MMORPG 최초로 부분유료화 모델을 도입한 게임이었어요.
당시 월정액 2~3만 원이 당연했던 시장에서 '평생 무료' 라는 획기적인 안을 내놓은 것이죠.
"게임은 무료인데 매출은 어떻게 내고, 유저에게 부담은 안 가게 하려면 어떻게 하지? 그런 고민을 처음 했어요.
누구도 아무도 안 해본 고민이었죠.”
웹젠에 재직하실 당시엔 썬(SUN) 온라인을 통해 가이드와 시스템이 없는 최초의 MORPG에서 MMORPG로의 전환과 뮤 레전드(MU Legend)에서는 글로벌에서 정식 후속작을 만드는 난이도 높은 업무를 주도하셨어요. 이후 플레이스테이션5 (PS5) 런칭 타이틀로 소개되며 전 세계의 기대를 모은 한국 인디게임 '리틀 데빌 인사이드(Little Devil Inside)'에 합류해 보조 프로듀서 역할을 하시게 되었습니다.
그 조각들이 하나씩 모여 창업의 발판이 되었어요.
"리틀 데빌 인사이드 당시 소니(SONY)와 일해보고, 글로벌 유저들의 피드백을 받아보면서 알게 됐죠. 한국에서도 충분히, 글로벌에서 성공하는 인디게임을 만들 수 있구나."
지금 보면 미친 짓

그렇게 13년을 다닌 웹젠을 퇴사할 무렵 만손 대표님은 업계의 공기가 달라졌다고 느꼈어요.
"게임을 어떻게 재밌게 만들지보다, BM부터 고민하는 기조가 시작된 타이밍이었어요. 저는 순서가 반대라고 생각했거든요. 어떻게 재밌지를 먼저 고민하고, 그다음 이 게임엔 어떤 BM이 어울릴까를 고민하는 게 당연하다고요."
재미로 승부하는 게임을 만들 수 있는 곳이 없을까? 그런 곳이 없다면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2021년 12월 트라이펄게임즈가 설립되었어요. 다만 그 시작이 교과서적이지 않았다고 대표님은 스스럼없이 인정했어요.
"저는 창업할 때 뭘 만들지 생각을 안 하고 시작했거든요. 지금 보면 미친 짓이라고 생각합니다. 준비없이 법인부터 만들었죠. 정말 함께할 멤버들만 보고 결정했던 거예요."
만손 대표님이 창업한지 석 달 만에 첫 프로젝트에 브레이크가 걸렸어요.
'인디게임' 하면 떠오르는 픽셀 그래픽의 관성을 따라 복셀(Voxel, 3D 픽셀) 그래픽 게임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3개월을 개발해 정부지원사업 발표장에 들고 갔는데, 그날 대표님은 심사위원들의 표정에서 ‘안되겠구나’를 직감했대요
"'이거 아닌데'라는 표정이었어요. 처음엔 제가 마지막 발표 순서라 힘드신가 했죠. 저희는 '20년 경력 멤버들이 풀3D 액션 게임만 오롯이 해온 팀입니다'라고 소개해놓고, 정작 들고 간 건 마인크래프트 같은 캐릭터로 액션을 하는 게임이었으니낀요. 우리가 주장하는 것과 결과물 사이의 괴리가 컸던 거죠."
대표님은 다시 방향을 바꿨어요. ‘우리가 잘하는 걸 하자’ 복셀 프로젝트는 곧바로 접었어요, “그렇다면 우리가 잘하는게 뭐지?”
동료들 간 공통점을 뽑아보니 답은 명확해 졌어요. 역시나 PC·콘솔, 풀3D, 액션. 마침 엘든 링이 출시 몇 달 만에 시장을 휩쓸고 있었죠.
"소울라이크를 구매한 유저의 80%가 엔딩을 못 봐요. 찾아보니 저만 그런 게 아니더라구요. 이 시장은 분명히 커질 거고, 그럼 나 같은 유저를 위한 소울라이크 입문작이 필요하겠다. 그렇게 시작한 게 V.E.D.A입니다."
실패의 교훈은 타겟 설정에도 새겨졌어요.
"'글로벌 액션 게임 유저' 이렇게 뭉뚱그리면 개발 중에 결정할 때마다 흔들려요. V.E.D.A는 '소울라이크를 사고 중도 포기한 유저'가 메인 타겟이에요. 소울라이크에 관심 없어? 그럼 우리 유저가 아니야. 이게 명확하니까 판단이 안 흔들리는 거죠."
6시간 동안 화장실도 안 갔대!

V.E.D.A의 첫 빌드는 3개월 만에 나왔어요. 보스전 딱 하나짜리 프로토타입으로. 아이템도, 회복 물약도, 이동할 맵도 없었습니다.
시작하면 보스가 눈앞에 있고, 싸우고, 그게 전부였는데, 팀은 그 빌드를 들고 곧장 게임쇼에 나갔어요.
"한 유튜버분이 실시간 방송으로 플레이하시는데, 화장실을 한 번도 안 가고 6시간 동안 도전해서 결국 보스를 잡더라고요. 그때 처음 느꼈어요. 이거 됐다."
두 번째 확신의 순간은 2024년 8월에서 독일 게임스컴이었는데요. 도쿄게임쇼 등 아시아 무대에서는 인정을 받아온 팀이었지만 서구권 게임쇼는 처음이었어요. 그런데 게임스컴이 직접 발간하는 데일리 매거진의 '주목해야 할 인디게임'에 V.E.D.A가 올랐어요.

"각 나라를 대표하는 인디게임 수백 개가 나오는 무대거든요. 서구권에서도 되는구나. 그게 제일 기뻤던 순간이었어요."
공고 하단 마지막 줄에서 발견한 웹툰IP의 발굴 기회

타이틀 '레벨업 못하는 플레이어'의 시작은 더 절박했어요.
회사의 생존을 위해서는 자금이 필요했고, 팀이 찾은 해결책은 경기콘텐츠진흥원의 웹툰 IP 게임 지원사업이었요.
문제는 공고에 올라온 카카오엔터테인먼트 IP가 전부 캐주얼 장르였다는 것인데요, 풀3D 액션 팀과 결이 맞지 않아 보였어요.
"못 하겠구나, 하고 싶은데…그러다 공고 맨 밑을 봤어요. 조그맣게 '카카오엔터가 보유한 다른 IP도 협의 가능'이라고 한 줄 써 있더라고요."
그 막줄을 붙잡았습니다. 액션 게임에 어울릴 만한 IP 세 개를 추려 원작을 전부 읽고, 하나를 골라 기획안까지 만들어 제안했어요. 그렇게 확보한 것이 글로벌 누적 조회수 2억의 웹툰 '레벨업 못하는 플레이어'에요.
"웹툰 지원사업에서 이런 식으로 진행된 사례는 아마 저희밖에 없을 거예요."
웹툰 IP 게임은 대부분 모바일로 나왔지만, 트라이펄은 이 IP의 액션성이 PC·콘솔에서 살아난다고 판단해 플랫폼과 장르 자체를 원작에 맞춰 설계했습니다. 스타일리시 액션에 로그라이트를 결합한 이 게임은 팀의 첫 출시작으로 완성 단계에 있습니다.
글로벌 유저 평가에서 액션과 아트 스타일은 100점 만점에 85점.
"이제 로그라이트 요소만 잘 다듬으면, 괜찮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보고 있습니다."

작은 배의 항해술
물론 그 사이에 자체 IP였던 V.E.D.A를 잠시 뒤로 미루는 결정이 있었어요.
"게임 개발은 정말 변수와의 싸움이거든요. 대작을 만드는 큰 팀은 대형 선박이에요. 파도가 쳐도 꾸준히 갈 수 있죠. 저희 같은 소규모 팀은 작은 배예요. 파도에 흔들릴 수밖에 없어요. 그렇다면 중요한 건 하나죠. 방향을 틀어야 할 때, 얼마나 빨리 틀 수 있느냐. 그건 작은 팀만 가능한 거거든요.냉철한 판단이 필요할 때는 제 생각을 코파운더들에게 먼저 공유하고, 듣고, 협의한 다음에 진행해요."
트라이펄의 핵심 멤버들은 만손 대표님과 7년에서 10년을 함께 일해온 베테랑 동료들이에요.
"아' 하면 '어' 하는 사이죠. 서로 뭘 잘하는지, 뭐가 부족한지도 다 알고요. 저희 회사의 제일 큰 장점은 멤버들입니다. 4050으로 평균 연령은 높은 편이지만, 지금도 같이 성장하고 있어요."
"40명, 100명 규모 스튜디오의 PD를 10년 넘게 하면서 산전수전 다 겪었다고 생각했는데, 모든 최종 결정의 책임자가 되는 건 딱 한 단계 차이인데 그 차이가 정말 크더라고요. 대표라는 직책을 스트레스 없이 수행하는 건 불가능한 것 같아요. 그래서 대표일수록, 스스로 풀 수 있는 자기만의 방법이 하나는 꼭 있어야 합니다."
만손 대표님은 스트레스 해소 방법으로 2가지를 꼽았어요. 하나는 건프라. 조립에 몰입하는 시간. 다른 하나는 주말마다 천안으로 야구하는 딸 보러가기. "딸이 훈련하는 거, 시합하는 거 보고 있으면 스트레스가 풀려요."
정형화된 공식이 깨지는 곳

만손대표님이 이번 슈퍼패스트 넥스트에 지원한 건 공고가 뜬 첫날이었어요.
"아침에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업계 근황을 보는 건데, 보도자료가 뜬 날 바로 알았어요. 슈퍼패스트가 걸어온 길을 계속 지켜봐 왔거든요. 하이퍼캐주얼 게임 아이콘에 111%라는 브랜딩을 새기고 성공 사례가 되는 걸 보면서, 센세이셔널하다고 생각했어요. 한국 대기업들도 잘 하기 어려운 프로그램을 한다니까 바로 '이거 신청해보자'가 된 거죠."
서류심사를 통과한 후 피칭데이의 두 키워드는 '다름'과 '빠름'이었어요.
“다름에는 자신이 있었어요. 소울라이크 입문작이라는 저희의 포지션도, 웹툰 IP를 PC·콘솔 액션으로 구현한 것도 전례없는 길이었으니까.”
다만 확신이 서지 않았던 건 빠름이었는데요.
"저희 정도 퀄리티의 액션 게임을 만드는 속도로는 분명 빠른데, 물리적인 시간으로 보면 캐주얼 게임보다 빠른 게 아니잖아요. 이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예측이 하나도 안 되더라고요."
결과적으로 속도가 아니라 밀도였습니다. 레벨업 못하는 플레이어는 2024년 1월 세 명으로 개발을 시작해 9개월 만에 핵심인 전투 액션을 완성했고, 이후에도 10명 규모를 넘지 않고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V.E.D.A 역시 세 명이 석 달 만에 만든 프로토타입에서 출발한 게임인데요.
"몇 명이 만들었는지는 사실 아무도 관심이 없어요. 기간만 보이니까 '오래 만드네' 하시죠. 하지만 이 인원으로 이 퀄리티를 이 기간에 만드는 건 꽤나 빠른 겁니다."
"요즘 게임업계 자금 상황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업계에 계신 분 중에 모르는 분이 없을 거예요. 그런 상황에서 선발됐다는 것 자체가 기뻤고요. 그런데 투자만큼 컸던 게, 앞으로 슈퍼패스트와 협업하면서 어떤 도전과 성취가 있을까 하는 상상이었어요."
유저가 재미없다면, 재미없는 거다

만손 대표님께 ‘성공’의 기준이 뭐냐고 물었어요.
"인터넷에서 어떤 음식점에 붙어 있는 포스터를 봤어요. '손님이 맛없다면 맛없는 거다.' 게임도 똑같거든요. 셰프에게 창작의 욕구와 자부심이 있듯이 개발자도 그래요. 저도 그게 없진 않아요. 우리가 작품을 만드는 건 맞지만, 유저가 그 작품을 어떻게 느끼고 좋아해주는가는 완전히 다른 문제인 것 같아요."
"유저가 맛없다면 맛없는 거다. 유저가 재미없다면 재미없는 거다. 재밌어야 판매량이 나오고, 재밌어야 입소문이 나요. 재미를 빼고서는 성공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트라이펄의 개발 방식은 '빠르게 검증한다'로 요약되요. V.E.D.A는 3개월 만에 유저 앞에 섰고, 레벨업 못하는 플레이어도 작년 도쿄게임쇼 공개 이후 게임쇼 출품과 FGT, CBT를 거치며 유저 평가로 다듬어지고 있어요. 게임쇼에 나가는 이유 또한 상을 넘어서 유저의 피드백을 위한 것도 있었어요.
인터뷰 말미, 만손대표님께 창업을 꿈꾸는 개발자에게 해줄 조언을 부탁했어요.
"첫째, 이 게임이 한 문장으로 어떻게 소개되는지, 그 문장이 유저에게 통하는지부터 검증하세요. 둘째, 핵심부터 만들고 욕심은 뒤로 미루세요.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은 게 계속 생기는데, 핵심을 검증하기 전에 붙이기 시작하면 시간만 늘어나고 출시는 못 하고 끝날 수 있어요. 셋째, 핵심 타겟을 구체화하세요. '글로벌 액션 유저' 이런 건 타겟이 아니에요."
그리고 하나 더. 돈만 보고 시작하지 말라고 하네요.
"어떻게 재밌게 만들어서 돈을 벌지, 이 순서로 이어져야죠. 돈만 보고 시작해서 되는 사업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레벨업 못하는 플레이어는 2027년 상반기 정식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V.E.D.A가 그 뒤를 이을 예정입니다.
두 게임은 슈퍼패스트의 스팀 전문 퍼블리셔 ‘오프문’에서 퍼블리싱 됩니다!
앞으로도 트라이펄게임즈의 행보를 잘 지켜보고 애정과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